어느 날 자장은 스승인 공자에게 단독으로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잡았다. 이때 공자는 고희를 넘긴 뒤였으니, 자장이 스물서너 살 무렵이었다. 자장은 이생을 따로 불러 큰 허리띠 하나를 내놓으며 부탁했다.
“이생. 오늘은 내 곁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한 자도 빠뜨리지 말고 적어주시구려.”
자장은 일찍이 자기 허리띠에 선생님의 말씀을 직접 기록한 적이 있었다. 자장이 이때의 감동을 기념하고, 그때처럼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특별히 별도의 비단 허리띠를 준비한 것이다.
“선생님, 저는 벼슬도 벼슬이지만,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훌륭한 지도자라는 평판을 얻고 싶습니다.”
중국 드라마 ‘공자’의 한 장면
자장은 어떻게 해야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공자가 자장을 가까이 불러 말했다.
“사야, 지금 내가 말하는 다섯 가지 미덕을 진심으로 실천하고, 네 가지 악덕을 멀리한다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할 수 있겠느냐?”
“최선을 다해 가르침을 받아 평생토록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다섯 가지 미덕이란 첫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되 낭비함이 없어야 한다. 둘째,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면서 원망을 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셋째, 마땅히 목표 실현을 추구하되 개인적인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넷째,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함을 잃지 않되 교만하면 안 된다. 다섯째, 위엄있되 사납지 않아야 한다.”(子曰 君子 惠而不費 勞而不怨 欲而不貪 泰而不驕 威而不猛.)
자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선생님. 참으로 쉬운 일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씩 풀어서 설명해주십시오. 은혜를 베풀되 낭비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사야, 생각해보아라. 먼저 사람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 그것을 이뤄주는데 힘을 집중하면 낭비가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 은혜를 베풂에 있어 사람들이 은혜의 참뜻을 모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지도자가 은혜를 베푸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일을 시키면서 원망을 사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꼭 필요한 일을 필요한 시기에 하도록 지시하고 일을 배치하면 누가 그것을 원망하겠느냐?”
“목표 달성을 독려하는 것이 자기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처럼 비치지는 않겠습니까?”
“누가 보더라도 리더로서 해야 할 마땅한 목표를 제시하고 그것을 합당한 방법으로 추구해 실현한다면 그것이 어찌 개인적인 탐욕으로 폄하되겠느냐?”
“어떻게 해야 태연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은 것입니까?”
“중대하다 해서 신중하고, 사소하다 해서 자만하는 모습이어선 안 된다. 군자는 보는 사람이 많든 적든, 맡은 일이 크든 작든 한결같이 성실해야 한다. 이것을 태연하면서도 교만스럽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위엄이 넘치면서도 사납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군자는 늘 용모를 단정히 하고, 표정은 밝은 가운데 진지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은 지도자의 당당하고 의연함을 보고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엄이 넘치면서도 사납지 않은 모습이 아니겠느냐?”
자장은 내가 잘 기록하는지 돌아보고 다시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러면 지도자가 물리쳐야 할 네 가지 악덕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사야, 잘 듣거라. 군자가 남을 부리고 이끄는 위치에 있을 때 해서는 안 될 행동은 다음과 같으니라.
첫째,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채, 엄벌하는 것이다. 이를 리더의 잔학(虐)이라 한다. 오만하고 관용이 부족해 아랫사람을 잔인하게 다루는 자이다.
둘째, 일을 실행함에 있어 경계할 점을 미리 일러주지 않고 성공만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리더의 횡포(暴)라 한다. 일의 핵심은 전수해주지 않으면서 잘못한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부류이다.
셋째, 지시는 늦게 하고 일의 달성은 사납게 독촉하는 것이다. 이것을 리더의 도둑질(賊)이라 한다. 일이 안 되면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다행히 결과가 좋으면 자기의 공으로 삼으니 도적이나 다름없다.
넷째,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놓고 온갖 생색을 내며 주는 것이다. 이런 자는 리더가 아니라 창고지기(유사有司)에 불과하다. 마치 자신이 포상을 사적으로 베푸는 것인 양 인색하게 굴고, 줄 때에도 줄 듯 말 듯하면서 아랫사람의 마음을 시험하며 공(公)으로 사(私)를 확인하려 드는 자이니, 그 그릇의 크기가 소소한 소모품 창고열쇠를 흔들며 으스대는 자의 크기에 지나지 않는다.”(子曰 不敎而殺 謂之虐 不戒視成 謂之暴 慢令致期 謂之賊 猶之與人也 出納之吝 謂之有司. 이상 ‘요왈’편 2장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