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큰 고민인 규칙 만들기와 지키기, 과연 어떤 원칙이 필요할까? <출처: gettyimages>
밤 12시,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가던 엄마는 종민이 방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열어 보니 종민이가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종민아, 지금 뭐하니?”
“친구랑 카톡 하고 있어.”
“스마트폰은 어떻게 쓰기로 했지?”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서요. 알람 맞추느라……”
“저번에도 그렇게 말해서 엄마가 어떻게 했지?”
엄마가 종민이 머리맡에 놓인 작은 탁상시계를 가리켰다.
“우리 집 규칙이 뭐라고 했지?”
“10시 이후에는 스마트폰 사용 금지요.”
“그래, 그런데 이게 몇 번째지?”
“세 번째요…….”
“그래, 우리 규칙대로 일주일 동안 핸드폰 압수다. 이리 내놔.”
“엄마, 내가 잘못한 건 알지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니야?”
“뭐?”
“내 친구들은 다 늦게까지 쓴단 말이야. 엄마가 아들을 못 믿으면 누굴 믿어? 그리고, 우리 집만 너무 엄해. 일주일 동안 핸드폰 없이 어떻게 살란 말이야? 용돈도 그래. 순종이 용돈은 나보다 두 배가 많은데. 왜 우리 집만 불공평해? 나는 꺼내놓고 못쓰게 하면서 엄마, 아빠는 마루에서 핸드폰 쓰잖아. 이건 말도 안 돼.”
“넌 학생이고 엄마 아빠는 어른이잖아. 이리 내놔. 열 셀 때까지 안 내놓으면 2주일로 늘어난다. 하나, 둘…….”
“에이씨!”
결국 종민이는 엄마에게 핸드폰을 건네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렸다.
엄마도 한숨이 나왔다. 아이를 위해 규칙을 만드는 건데 아이는 매번 규칙을 깨고, 구구절절 변명만 늘어놓는다. 거짓말을 할 때도 한다. 감시하는 것도 지치고, 벌을 주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매번 벌을 줄 때마다 위가 올라가는 것도 불안하다. 저러다가 “난 몰라!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라고 폭주할까 무섭기도 하다. 다른 집에 비해 엄한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십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큰 고민인 규칙 만들기와 지키기, 과연 어떤 원칙이 필요할까? 먼저 분명한 것은 아이들에게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직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만한 능력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고, 그냥 ‘하고 싶어서’, ‘느낌이 와서’ 행동했다가 결과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십대의 특징이다. 이럴 때 부모의 역할이 필요하다. 사고가 난 다음 수습할 수도 있지만, 미연에 방지하거나 재발을 막기 위해 규칙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불편하고 이해하기 어려워하지만, 차차 그 이유를 이해하면서 규칙을 통해 모두가 편안해지고 나아진다는 것을 인식하면 규칙을 받아들이게 된다. 규칙 지키기는 충동적인 십대 아이를 위험에 빠지지 않게 보호할 뿐 아니라, 성인이 되는 준비 과정이기도 하다.
규칙을 어기고 싶은 것은 십대의 본능이다.
그러나 십대의 눈에 규칙은 불필요한 족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친구 집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자기 집만 가혹하다고 여긴다. 아이들은 자기 집의 좋은 면은 보지 않고, 친구 집과 비교해 불리한 것만 두드러지게 본다. 친구네 집은 모든 게 좋아 보이고, 친구 엄마는 상냥하고 화도 안 내고 요리도 잘하고, 용돈도 더 많이 주시는 것 같다.
십대의 눈에 규칙은 불필요한 족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친구 집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자기 집만 가혹하다고 여긴다. <출처: gettyimages>
때로는 우리 부모가 더 관대하고 너그럽다는 걸 인정하는 십대들조차 규칙을 깨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실 아이는 부모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영역과 세계에 대한 갈증을 느끼면서, 어떻게든 자기 판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아이들은 십대가 되면서 생활 반경이 넓어지고, 혼자 해결할 일들도 많아진다. 귀가 시간도 늦어지고, 친구들과 극장이나 쇼핑몰 등에도 가게 된다. 아이 입장에서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으니 규칙도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부모가 정해준 어린아이의 룰이 아닌, 보다 어른스러운 규칙을 원한다. 그 수준은 부모가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다. 그래서 갈등이 생긴다. 부모는 많이 양보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에겐 흡족하지 않다. 부모가 만든 규칙을 넘어서 모험을 반복적으로, 또 본능적으로 감행한다. 어느 선까지 갔을 때 부모가 화를 내는지, 또 어디까지는 안전한지 호시탐탐 노린다.
친구 생일 파티에 간다는 아이에게 9시까지는 집에 오라 했다고 가정하자. 평소에는 귀가 시간을 지키던 아이가 이번에는 20분 늦게 돌아와서는 버스가 늦게 왔다고 변명했다. 이때 부모가 그냥 넘어가면 아이는 그 다음부터는 친구집이나 노래방에서 9시에 일어나도 된다고 이해한다. 그러면서 귀가 시간을 조금씩 뒤로 미루고, 어느 순간 부모가 꾸지람을 하면 “전에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라는 말을 하게 된다. 아이는 억울하고, 부모는 황당하다. 이때 “너 이제 친구 생일이라고 가지 마!”라고 극단적인 벌을 주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그보다는 부모의 규칙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해주고 지키도록 강하게 주의를 주는 편이 낫다. 아이가 납득하기 어려운 벌을 주면 거짓말을 하고 부모를 속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규칙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보호하고,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룰을 자기 것으로 체득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십대에게 규칙은 도전해서 깨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반된 목적을 인정하되, 아이가 부모에게 도전하고 선을 넘으려는 것을 무조건 부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일탈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부모에게는 끈기가 필요하다. 아이는 규칙을 만든다고 해서 곧바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러 번 시행 착오를 거치고 좌충우돌하면서 서서히 바뀐다. 그렇게 변화한다 해도 온전히 부모가 바라는 모습대로 되지는 않는다. 아이가 80% 정도만 달성해주어도 엄청나게 잘 만든 규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러니 아이가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다음에는 잘 지켰으면 좋겠다”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감정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 규칙에서 벗어나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규칙을 없애는 것보다 낫다.
지키지도 않는 규칙, 확 없애버릴까?
부모는 속상하다. 괜히 아이가 잘 지키지도 않는 규칙을 만들어 그것 때문에 아이와 부모 모두 고생만 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출처: gettyimages>
부모는 속상하다. 괜히 아이가 잘 지키지도 않는 규칙을 만들어 그것 때문에 아이와 부모 모두 고생만 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는 것은 부모의 직무 유기다. 아이가 아무리 규칙을 어기고 선을 넘는 일을 반복해도, 머릿속으로는 규칙을 인지하고 있다. 자기가 뭘 잘못하는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규칙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만약 아이가 도저히 지키기 힘들어 번번이 어기고, 부모들도 관리하기 힘든 규칙이라면 조정이 필요하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퇴근 전까지는 절대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한다면, 아이가 지킬 수 있을까? 또, 부모는 아이가 텔레비전을 보는지 안 보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규칙이란 현실적이어야 하고, 이행하는 데에도 실현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용돈을 주지 않기로 하면서 밥값이나 교통비도 주지 않는다면? 스마트폰을 석 달 동안 주지 않겠다고 하고 아예 정지시켜버린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규칙을 정할 때에는 어떻게 정하는 것이 좋을까.
부모가 아이에게 규칙을 제시하고 지키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지 먼저 생각해보자. 부모가 규칙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권리다. 세상에서 우리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하고, 염려하고,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은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제가 정한 규칙이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라는 의문을 갖는다. 그럴 가능성도 물론 있다. “제가 정한 규칙이 옳은 걸까요? 이게 정답일까요?”라며 불안해한다. 이 역시 가능한 질문이다. 그래서 규칙을 정하기 전에 먼저 십대 아이의 다른 집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용돈, 스마트폰, 귀가 시간, 주말 시간 활용 등은 대부분의 십대들에게 큰 이슈들이다.
규칙에 정답은 없다. 규칙의 수준은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출처: gettyimages>
이때 부모가 알아야 할 것은 ‘규칙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규칙의 수준은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정답을 찾다간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그보다 부모는 “나도 내 결정이 옳다고 확신할 수 없다. 가끔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정권을 가진 유일한 사람은 나다. 내가 가장 확실한 사람이다”라는 마음으로 소신껏 규칙을 만드는 것이 좋다. 그리고 양쪽 부모가 모두 그 사안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부모가 ‘옳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모이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다. 만약 새로운 사안에 대해 부모 중 어느 한쪽이 바로 반응해서 규칙을 만든다면 일단 다른 부모는 그게 과하거나, 썩 좋지 않다고 해도 일단은 받아들이고 보조를 맞추는 것이 좋다. 그러고 나서 부부끼리 다시 진지하게 얘기하는 것이 좋다. 그 자리에서 반박하면서 “이건 너무 과해, 지킬 필요가 없어”라고 한다면 부모의 권위는 흔들리고, 아이는 양쪽 부모를 오고 가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규칙을 흔들어댈 수 있다.
이제 왜 규칙을 만들었고, 의도가 무엇이며, 무엇을 바라는지 아이에게 충분한 설명을 한다. 동의는 중요하지 않다. 부모가 ‘무조건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설명을 했다고 사전 조치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아이의 동의 여부는 이차적인 것이다. 부모가 정한 규칙은 성인들끼리의 법적 계약이나 합의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가 항상 옳기 때문에 규칙을 정한다기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부모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중심으로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관성을 갖고 일정 시간 동안 유지하겠다고 결심한 것만 규칙으로 정한다. 무엇보다 가정의 규칙은 아이만 일방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닌 부모도 함께 지켜나갈 전체의 규칙이다. 즉, 부모가 함께 규칙을 지켜야 아이도 수긍하고 공평하다고 여기며, 그 규칙을 지켜나가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십대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커가는 속도에 맞춰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긴다. 그리고 그 규칙은 매번 깨지거나 도전을 받는다. 이때 부모는 자신의 권위에 금이 갔다며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아이의 정신적 성장을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부모가 기꺼이 아이와 함께 규칙에 대해 대화하고 아이와 함께 보조를 맞춰나간다면, 아이는 점차 안정을 찾고, 규칙을 자기 것으로 내재화하며 성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규칙을 만들고 지켜 나가게 하는 것은 ‘부모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의무’이지만,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 아이를 제일 잘 알고 끝까지 책임질 사람은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21&contents_id=38518&leaf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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